
방구석 미술관 - 조원재
미술을 함께 보고, 느끼고 가지고 놀며 공감하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제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른 누구의 미술이 아닌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당신의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밤을 지새우며 글을 채웠습니다. 차갑게 머리로 아는 미술을 넘어 뜨겁게 가슴으로 공감하는 미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책은 예상밖의 생각들을 주제로 정리하여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게 구성하였다. 독자들이 예술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할 것을 고려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정말 많이 넣었으며 그런 점들을 잘 공략한 것 같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미술책이다.
나도 이전에는 미술은 교양있고, 품격있는 부자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런 편견을 부수고 꽤나 재미있는 미술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아서 좋았다. 작품만 보면 왜 화가가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작품에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지 헷갈렸는데 (작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 그래서 더욱 어렵다고 느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애와 그들이 살아온 배경, 사건들을 함께 집약하여 살펴보니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작품들을 남겼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문학이나 노래도 시대적 배경과 그들이 살아온 삶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먼저 알고, 책과 영화 노래들을 접하는 것이 좋은데 미술도 그렇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미술뿐만 아니라 어떤 작품이나 노래도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마르셀 뒤샹의 인생관과 미술관을 들여다 보면서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었고 각각의 화가들의 삶속에 내가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이전에는 왜 고흐가 술을 그렇게 먹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면 이 책을 읽고 “쉽게 그들의 삶을 판단해서는 안되겠구나”라고 느끼며 누구든 미술을 할 수 있고 미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미술을 찾아볼 수 있고, 미술은 난해하거나 기술적이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 같다. 이 책으로 더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고, 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을 찍고 SNS에 남기기 위한 미술관이 아니라 화가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몸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미술을 하고 싶다. 이 책을 보면서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기도 했고, 미술이 너무 재미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때 아무 의미없이 배우던, 주입식으로 공부하던 미술을 버리고 그것들이 어떤 작품이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술을 시험으로 성적으로서 매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책 처럼, 화가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들과 화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다른 미술책들도 찾아보고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 첫번째 미술공부인데 (어떻게 보면), 처음 접하는 거라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들의 작품과 이름들이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계속해서 들여다 보고 그들의 삶을 느끼며 나의 삶의 목적들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었다.
“너는 한번이라도 뜨겁게 타올랐던 적이 있었나”
화가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미술에 바쳤고, 그들의 열정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그랬던 적이 있던가. 어떤 한 분야에 미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무언가를 해 본적이 있던가. 나 스스로를 성찰해보게 하였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고, 쉽고 누구나 접할 수 있으니 모두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2탄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른 미술가들의 그림과 삶도 들여다 보고 싶다.
우리에게는 난해하고 어려운, 권위적인 미술이 아니라 이런 쉽고 이해하기 좋은,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미술이 필요한 것 같다.
1. 죽음앞에 절규한 에드바르트 뭉크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미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뭉크 그림의 주인공은 오직 그 자신이다. 신화, 종교, 누군가의 얼굴,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
그는 첫사랑의 실패에 의해서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적 공감대나 고정관념에 관계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생각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 자신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 사랑의 고통, 존재의 허무함등의 감정을 회화에 표현했다.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경험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미술계 여성 혁명가,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바람둥이 였다.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시절 전차에 부딪혀, 그 슬픔을 미술로 승화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남편의 외도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마다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었고, 심지어 화가였던 자신의 남편 디에고 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3. 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드가’의 예술은 그가 평생 멀리하려 했던 대상인 ‘여성’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특히 드가는 발레리나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당시 발레리나는 빈민가 소녀의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돈많은 귀족 남성들은 무대가 끝나면 발레리나들을 유혹하거나 스폰서로서 그녀들을 도와준다는 빌미로 성적인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드가는 있는 그대로의 발레리나를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째서 귀족 집안의 자제였던 그는 그 시대의 여성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그는 독신남이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 양식을 거부했다. 하지만 자연빛, 외광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고전주의 양식을 거부하여 인상주의자이지만 빛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인상주의자가 아니라고 평가를 받는다.
인상주의란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만을 그리며,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 고전주의 회화는 사물 고유의 색과 형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인상주의는 그렇지 않았다.
4. 전세계가 사랑한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압생트라고 불리는 초록색의 술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이런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압셍트라는 술은 산토닌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황시증 부작용이 있었다. 고흐 또한 부작용으로 모든 대상을 노랗게 보게 된다. 그 후 그는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높은 노랑을 찾아낸다. 그래서 유독 고흐의 작품을 보면 노란색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또한 튜존이라는 성분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킨다. 환청이 심해진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 후 병을 고치기 위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서서히 균형을 찾아갈때 자신의 동생 ‘테오’의 상황이 나빠지고 고흐는 괴로움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압셍트라는 초록악마라는 술 덕분에(?) 반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한 예술가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극대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압생트는 악마일까? 요정일까?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서 색을 통해 자연의 생기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색에 그의 감정을 온전히 담았다.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고 사물속에 숨겨진 본질을 끄집어 내려고 하였다.
5.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그림 <키스>의
구스타프 클림트

고전주의 화품으로 아주 유명했던 그는 왕의 훈장을 받을 만큼 뛰어난 그림실력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신의 예술을 되돌아 본 후 전통적인 미술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분리주의라는 이름으로 미술의 자유를 얻기위해 힘쓴다.
너의 행동과 예술작품으로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소수의 사람들을 만족 시켜라.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인간이 아무리 철학을 한다 한들, 결국 고통과 번민속에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의학을 한다 한들,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는 그림으로서 철학, 의학, 법학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니체는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인간은 끈기를 유지하고 투쟁하여 새로운 가치 규범을 만들게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구스타프 클림트의 마지막 작품인 <요람>을 보면 아이를 그린 것으로 보아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6. 19금 드로잉의 대가 에곤 실레


아버지와 누이가 매독으로 죽게 되며 성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예술주제를 가지게 된다. 그 후 클림프와 오스카 코코슈카를 만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직설적인 누드 드로잉을 알게 된다.
신예술가는 자립적인 존재여야 한다. 신예술가는 창조자여야 한다. 신예술가는 과거와 미래의 산물없이도 오로지 혼자서 직접 기초부터 쌓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야 신예술가라 할 수 있다.
자기신뢰야 말로 용기의 초석이고, 자기 신뢰는 위험이라는 요소와 친하게 되어있습니다. 용기란 고뇌하며 위험에 맞서는 정신을 의미한다.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그는 예술의 시작을 자기자신에서 찾는다.
내면에서 꿈틀대는 불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자기확신과 열정을 유일한 무기로 예술혼을 불태운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자기 내면의 민낯과 젊음의 초상을 자기만의 몸짓과 표현으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그림에 투사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하지만 실레는 자신의 사지를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스무살의 차고 넘치는 젊음의 열기와 반항정신, 터져나오는 감정과 욕구들을 거르지 않고 쏟아낸다. 그래서 그런 그의 자화상을 보면 모든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놓은 듯 공감을 일으킨다. 또한 어릴 때 느꼈던 성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기도 한다.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성욕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그런데 유독 성욕만 금기되고 숨겨야 하는가. 사회적 터부인 성욕, 나는 거리낌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겠다.
그후 20대 중반을 향해 가던 실레는 점점 감성에 이성을 적절히 섞어 작품의 정교함을 높였다.
벗어날 수 없는 성욕의 굴레, 주체할 수 없이 타오르는 자기애, 젊음의 열기를 꾸밈없이 선으로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그는 또한 드로잉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7. 자연의 삶을 동경했던 폴 고갱

증권회사에 다니던 그는 점점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워가다가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미술에 몰두하게 된다. 어릴때 자연속에서 살았던 그는 원시와 야생이라는 주제로 원시인들이 있는 낙후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주관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 고갱만의 예술발견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 곡물창고로 가서 목을 매는게 낫지 않은가 매일 자문한다. 그림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길이다.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그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8. 그림은 아는데 이름은 모르는 에두아르 마네

원래는 고전적인 화풍을 지향하는 보수적인 화가였지만 시인 샤를 보들레르 (시의 주제를 약하고 추한 것, 동시대의 사람들에 중점을 두었다. 각 시대는 자신만의 자세와 시선, 몸짓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함), 일본 화풍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그 방향을 틀게 된다.
3차원 원근법에 기초하여 그림을 그리던 그는 평평한 그림을 추구하게 되었고, 수천번의 붓칠로 섬세한 그림을 그렸던 그는 윤곽선, 원색으로 작품을 마무리하였다. 평면과 단순함을 지향하고 시점을 두개로 잡고 그림을 그리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런 시도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풀밭위 퇴폐적으로 노는 부르주아들과 같이 현대의 생활, 동시대의 사람과 생활상을 그렸다.
9. 로맨틱한 풍경화의 대명사 클로드 모네

그는 미래로 가는 문을 연 남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상주의 미술가로 빛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의 탄생으로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났다. 또한 카메라의 발명으로 그는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지만 이전과는 달리 자신만의 색으로 주관적 감성을 담은 풍경화를 그렸다. 또한 평면성과 단순성을 담고 빛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우리는 사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비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은 없다. 사물의 색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사물이 지는 고유한 형은 없다. 사물의 형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건초더미
빛이 변하면 풍경 속 만물의 색과 형태가 변한다. 무한한 시간만큼 그 곳의 풍경도 무한히 다채롭게 그릴 수 있다.
그는 연작을 통해 빛과 빛에 비추어서 우리 눈에 보이는 색에 집중하였다.
10. 사과하나로 파리를 접수한 폴세잔
- 후기 인상주의, 세잔식 인상주의


세잔이 어릴 때,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은 부족했지만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는 자연을 보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회화개념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평생 과제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상주의의 기교와 정신을 더 이상 추종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세잔식 인상주의를 창조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의 본질과 회화의 균형을 기준으로 그림을 그린다.
모네식 인상주의는 빛의 찰나에 집중하여 그림이 흐려졌다. 그래서 세잔은 매 순간 변화는 자연의 껍데기 속 자연이 본질을 깨닫고 사물의 본연의 색, 형태에 집중한다. 그림을 그릴 때 처음부터 구성을 완벽히 하여 균형잡힌 그림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는 등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것을 계승하여 배울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정신적인 만족, 그것은 작업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것
11. 20세기가 낳은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 vs 앙리 마티스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마티스는 소극적으로 다시점(여러가지 시점)을 시도하였다. 피카소는 앙리 마티스의 개념을 차용하여 적극적으로 여러 시점을 사용하여 형태를 분해하고 사물을 도형으로 보는 관점인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창조하였다. 이것이 입체주의다.
나는 아름다운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이후에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에 색채를 가미하여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된 토론과 이야기로 더 미술을 발전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피카소 – 형태를 해방시켰다
마티스 – 강렬한 색채에 몰두하였다.
12.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 재해석을 통한 독자성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미술이라는 목적 하나로 파리에 간다. 전시회,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기법들을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기도 한다. 그 후 유명해지며 유대인으로서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고 유대인이 받는 핍박과 비극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구약성경 삽화작업을 26년간 하며 유대인으로서 105점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 후 인류애와 평화로 빛난 미래를 그리고도 하였다.
샤갈은 예술의 영감을 내면에서 끄집어 내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가 독자성을 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13. 최초의 추상 미술을 창조한 바실리 칸딘스키

엄친아였던 그는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 충격을 받은 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뮌헨으로 가게 된다. 뮌헨의 예술의 중심지였던 슈바빙은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이었고 그 곳에서 뮌터라는 여인을 만나 (불륜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 후 학생이었던 뮌터와 여행을 떠나 많은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칸딘스키는 그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구상회화가 아닌 마음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추상회화를 그린다. 화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을 그리는 것은 오히려 감정 표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정신세계를 순수하게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 후 청기사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뮌터에게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칸딘스키는 다른 여성과 결혼하게 되고 뮌터는 분노를 느낀다.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후 나치는 청기사파 작품을 퇴폐미술로 간주하고 그 작품들을 모두 숨겨놓았던 뮌터는 그녀가 80살이 되어서야 그림을 기증하게 된다.

뮌터의 새들의 아침식사
“ 나는 경험들을 형상화 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 었던 가? 여기에 쏟은 노력과 작업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칸딘스키가 떠나고 뮌터가 남긴 말
칸딘스키와 함께 자유롭게 춤추며 예술을 꽃피우던 그때 그 시절을 암흑이 아닌 빛나는 시기로 결론 짓는 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14. 현대미술의 세계를 연 마르셀 뒤샹


체스를 하며 사고력, 통찰력, 창의력을 길렀고, 그 후 예술을 접하여 파리에 가서 그는 풍자만화가로 경험을 쌓게 되었다. 입체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움직이는 입체주의를 만들게 되지만 거부당하게 된다. 그 후 그는 기존의 미술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안티미술”을 시작한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책, 창의적인 척하지만 과거 고정관념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당시 미술을 조롱한다.
그러면서 “머리로 하는 예술”, 기술력이 아닌 사고력으로 하는 미술을 하려고 한다. 아무런 의미없이 만든 그의 작품을 관객들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미술관을 소통의 장으로 만든다.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한것이다.
그리고 공산품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제거한 후 예술가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를 이용한다. “샘”이라는 소변기로 만든 작품으로 세상을 향하여 몰래카메라를 진행하여 예술계의 보수적인 면을 들추고 자신이 원하는 미술을 쟁취한다. 그 후 미술이 아닌 체스에 빠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예술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수고 삶 자체를 하나의 행위예술로 본다.
“예술가로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냐?” 는 질문에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작품들을 만드는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텍스트는 머리로 설득하지만 이미지는 마음으로 감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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