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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다정함이 인격이다 - 김선희 :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

호콩이 2025. 4. 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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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격이다 - 김선희



이 책은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어찌보면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워 지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했다. 다정함과 공감이 지능이고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우리는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아야 하는지, 그리고 다정함을 갖추어야하는지 몰랐던 나에게 이 책은 그 해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사람과 함께 해답을 찾기보다는 네이버에 물어보거나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빠르고 유용해지는 시대. 그리고 사람과 어울려 놀기 보다는 인터넷과 SNS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났고  어찌보면 수천년을 살아오면서 진화해온 인간에게 이런 빠른 변화는 적응하기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현 시대에 그렇게 우울증을 앓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사람이 왜 필요한지, 왜 내 주변에 오랜 친구가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효율만 추구한 적도 있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남들과 똑같이 상처를 받기도 했고 사람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 김선희의 의견이자 이 책의 주제이다.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존재이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사람을 통해서 그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사람이 없다면, 나의 상처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그 상처가 자연스럽게 치유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하는 존재이며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듯 하다. 
사랑을 통해서 치유된다면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누군가를 다정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는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불완전 하다는 것.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 하는 것에서 부터 변화가 시작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 하기에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사랑을 할 수 있고 서로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 나갈 수 있다.

남을 원망 하지 말고, 상처를 받았다면 타인을 통해서 치유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인생의 문제는 항상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을 완벽하게 수습 하려고 하기 보다는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배움을 얻고 더 나은 삶을 지향 하는 것.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매순간 충만함을 느끼는 것. 삶의 목표는 행복이나 돈이 아니라 안정감과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 것. 매순간을 즐기고 사람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런 삶을 이 책에서 소개 한다.

삶의 지향점을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내 삶과 이 순간을 깨끗하고 맑고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삶의 목표를 깨닫고 싶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고 책을 읽어 가면서 그 정답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삶을 되돌아 보고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책과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록 나의 삶도 더 발전 되는 것 같고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나를 다시 보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 가려고 해야 할 것 같다(한 번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람이 완벽해 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인간답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난 늘 겸허한 진실을 만난다.
“타인이 필요하다.”
이 진실은 이 책을 쓰는 긴 시간을 통과하며 더 명료해졌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감을 전제로 한다. ‘너와 나’로 시작하여 어느덧 ‘우리’가 되고 ‘모두’가 만나 공동체를 이룬다. 인간다운 삶은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며 실현되는 역사적 성취다.
 
타인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동반한다. 아픔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사랑이 그 상처와 아픔을 능히 녹여낸다. 이때 상처와 아픔을 녹이는 사랑의 온도는 ‘다정함’이다.
 
연약한 너와 나지만, 타인일 뿐이지만 믿음 위에서 단단히 연결되어 서로를 헌신적으로 돌볼 때 인간은 상처를 넘어 재생한다. 아픔을 딛고 성장한다. 사랑을 통해 재생하고 성장함으로써 우리는 ‘인격’이라는 최상의 상태에 조금이나마 가닿을 수 있다. 기실 다정함이 필요하다.
 
내 곁의 대상, 즉 의미 있는 타인의 사랑과 도움 없이는 나다움을 깨닫지도, 획득할 수도 없다는 역설은 ‘관계 없이는 나도 없다.’는 절대 명제를 고스란히 증거한다. 내 곁의 타인에게 나 또한 상대가 나다움을 이룰 수 있게 견인해 주는 타인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상실이 지속될 것이고, 좌절과 위기가 닥칠 것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몰라요. 슬픔 속에 갇히는 날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 위기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서 씨름하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배움의 자세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내 커다란 학습을 하게 되고 숙달감을 느끼게 됩니다. 탁월해지는 것이죠. 외풍에 맞서 그 차가움을 견뎌낸 힘을 저는 고귀하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행복 여부는 중요하지 않지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이나 마음, 입장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다는 것, 즉 인간적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스펙트럼임을 잊지 말 것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게 건강한 모습이다. 감정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알기 위해선 먼저 감정의 눈을 떠야 한다는 의미
 
실제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다움’은 발견하는 것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내가 이런 부분을 아파하는구나.’
‘내가 유독 이런 지점에서 화가 나는구나.’
‘내가 이러저러하여 좌절감을 느끼는구나.’
‘내가 무척이나 잘하고 싶어 했구나.’
‘내가 칭찬받고 싶었구나.’
‘내 적성과 자질은 이 영역이구나.’
‘내가 이 활동을 즐거워하는구나.’
‘내가 이 영역에서 특히 칭찬을 많이 듣는구나.’
 
중요한 건 자존감의 높낮이가 아니라 인간미와 개성이다.

내게 손상을 입힌 상대를 적당히 원망한 후 내 마음에 새겨진 손상과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자. 그리고 이 모두를 떠나보내자. 이게 핵심이다. 이때 회복이 찾아온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외도함으로써 짊어져야 할 가장 커다란 대가는 타인을 기만한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와 혐오다. 안과 겉이 다른 나. 내 만족을 위해 타인에게 치명상을 입힌 나
부부애는 깊이 있는 우정의 요소가 중심이며 배려와 이해, 이타성과 헌신의 요소로 확고해진다.
 
관계는 퍼붓듯이 행해지는 한쪽의 맹목적 희생이 아닌 관심과 민감성, 관찰과 조율 그리고 자주성과 독립을 토대로 풍성해진다.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을 민감히 감지하고
나를 충분히 내어주되, 아닐 경우에는 물러나 있는 것,
그런 시기적절한 주고받음이 관계의 핵심이다.

자, 일이 벌어졌다면 인정하자. 나 자신이 내 생각보다 연약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나의 거친 부분을 더 늦기 전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폭력은 안 된다는 것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수습하자. 할 수 있는 만큼 수선하면 된다. 인생은 수선의 예술이다.
 
인간은 충만함을 원한다. 내면이 온전하게 좋은 것들로 꽉 차길 소망한다. 채워짐에 대한 이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내면에 충만함이 부족하거나 빈약할 때 사람들은 가짜 대체물이라도 찾아 비어 있는 내면을 채우려 든다. 자기가 자기를 속인다. 이건 진짜라고, 좋은 거라고. 대체물로 허기를 채우고 기뻐한다. 가짜 충만함을 느끼고 승리했다 착각한다. 술에 취하고 명품 옷에 뒤덮여 지낸다. 운동에도 중독된다
 
성숙한 삶이란 원망하지 않는 삶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갈등 상황에서 남 탓을 하는 건 유아기적 대응이다. 어른의 다른 이름은 책임지는 자이기 때문이다.
 
“자기 책임을 방기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려 하지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문제의 완벽한 해결, 갈등의 완전한 제거, 인간의 완벽한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꼭 그럴 필요도 없다. 해결과 해소, 변화는 이분법이나 흑백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배우자가 완벽히 변화되어야, 자녀가 완벽하게 잘해야만 우리의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꼭 ‘그거야만’ 하는 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수만 가지다. 지금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조금만 더 수월하게, 해결을 향한 발걸음 하나, 실낱같지만 숨 쉴 틈과 공간, 약간의 해소와 깨달음, 잠시 동안의 휴식과 진정, 1mm의 변화, 작은 실천…
 
관계를 파괴하거나 손상시키면서까지 우리가 얻어야 할 건 없다.
 
자기 확신과 열린 마음의 균형
자기 확신만큼 중요한 심리적 자산은 개방성openness, 즉 열린 마음이다. 자기 확신과 열린 마음의 균형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나와 다른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고 대안이다. 감정이 얽히는 애정 관계, 부부 관계에서도 개방성이 낮고 자기 확신만 과할 때 역기능이 발생한다.
이들은 애정 관계에서 상대에게 몰입하고 헌신하고 전념하면서도 상대의 자유도 사랑한다. 상대의 특이점, 개성을 존중한다. 상대의 성향 중 나와 다른 성향이 있어도 그게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 맞는다’, ‘잘 맞지 않는다’라는 이분법적 평가와 단정에도 빠지지 않는다. 사고방식이 창의적이고 유연한 그들에게서 풍기는 여유와 이완은 주변 사람을 편하게 한다
 
발상의 전환
부부에게는 낭만적 사랑을 넘어 책임과 협력, 배려, 성실성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내심과 너그러움 같은 심리적 자질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자질은 외부 환경, 사건 사고, 갈등과 위기,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받아 흔들리기 쉽다. 단기 관계, 비즈니스 관계, 연애 관계와 달리 장기 애착 관계인 부부에게는 고난도의 적응력이 더욱 필요하다.
 
노력하고 애쓰지만 삐걱거리는 연약한 서로에게 연민을 갖자.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남편과 딸이 보여준 넘치는 사랑과 인내는 내가 내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스스로 포용할 수 있게 받쳐주고 또 받쳐주었다. 그들은 타인의 취약함을 문제시하지 않는 태도, 끌어안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내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너그러운 사랑을 실천했다. 부족한 나를 성실하게 사랑해주었다.
타인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잘남과 멋짐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의 연약함과 상처, 아픔을 사랑하고 돌본다는 것이고 상대가 자신의 취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녀린 인간임을 이해하고 그 고뇌를 함께 절감한다는 의미다. 그 자리에 깊은 사랑과 애착이 뿌리내린다. 신뢰도 깊어진다.

때문에 부부로 살면서 나를 감출 수는 없다. 나의 연약함, 부족함, 취약성, 수치심, 치부라 여기는 부분, ‘내 본질’을 감출 수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법을 배우자는 알고 있다. 격한 감정 상태가 되면 배우자는 나의 그 스위치를 눌러버린다.
연애 때와는 달리 서로의 감정 스위치가 올라간 상태에서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이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이 아니다. 결혼과 연애는 차원이 다르다. 연애와 차원이 다른 부부 관계의 난이도를 정확히 파악하자. 고난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자.
부부 갈등은 쉬이 돌아가는 길도, 마법의 길도, 자동 해결의 길도 없다. 직면해 씨름할 수밖에 없다. 씨름하며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성실한 씨름 속에서 깨달음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긴 호흡이기에 궁극의 보람도 크다.
스토리의 해피 엔딩에 집착하기보다 순간과 순간, 그 과정에 참여하자. 서로에게 참여하자. 나의 삶처럼 배우자의 삶을 응원하자. 그 열띤 과정 속 각종 체험이 인생의 기쁨이고 삶의 보람이다. 과정 속 체험이 나를 만든다

 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 깊이 묻혀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드러내지 못한 고통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상대의 아픔을 느끼고 거기에 공명할 때 외로운 인간과 인간은 진정으로 연결되며 그 유대감은 세상 풍파도 견디게 도와준다.
설령 성격이나 성향
 
상대의 아픔을 보자. 그리고 내 아픔을 보여주자.
 
인생은 위기와 문제를 수습해 가는 과정이다. 엄혹한 진실이다. 삶과 관계에 헌신한다는 것은 위기와 문제에 헌신하는 것이다. 성실하고 의젓하게 그때그때 해결해 나갈 뿐이다. 절대적 최선,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지금 내가 기울일 수 있는 최적의 헌신을 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하나 해결하며 배워 나가는 삶은 가치 있다. 삶은 배움의 터전이자 성숙 과정이기에.

 인간의 마음은 이해받을 때 변한다. 가장 깊은 곳의 남모르는 아픔을 이해받을 때 인간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옥토가 된다. 거기에서 변화의 싹이 튼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사랑받고 싶은 본성, 인정받고 싶은 본성이다.
 
수많은 문제를 품고 있는 결혼 제도가 지금껏 폐기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인간사의 본질인 역경을 뚫고 나가는 데 어른과 어른의 일대일 장기 애착 관계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속속들이 다 알려 하지 말자. 성인 자녀가 알아서 판단해 보여주는 만큼, 배우자가 보여주는 만큼, 그만큼 함께하는 걸로 충분하다. 건강한 참여와 느슨한 결합이 오래가는 관계, 안정적인 관계의 열쇠다.

우리는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배운다. 인간에게 분명한 선과 악이 존재한다는 것,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실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또 상대방을 바꿀 수 없다는 것, 관계가 한결같을 순 없다는 것,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는 없다는 것, 관계에서 통증과 부당함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럴 때는 건강히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상대의 문제가 지배적이라면 정리와 손절 타이밍을 잘 잡는 것도 대인 관계의 지혜라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관건이지만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선택하는 내 안목도 키워야 한다는 걸 배운다. 이 모두가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미흡하더라도 만족한다. 미흡하지만 행복할 수 있음을 안다. 미련 없이 털어버린다. 아님 말고. 종종 그렇게 가벼워진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수만 가지다. 위기와 난관을 해소하는 방법도 수만 가지다. 행복과 만족을 위해 단 하나의 묘책을 찾고 고집하는 것은 자기중심성, 강박관념과 불안일 뿐이다.
 
“공감의 가치가 진리의 가치보다 더 높다.” ─ 하인즈 코헛
 
누군가 나를 사랑으로 책임져 준다는 것과 헤아려 준다는 걸 알게 될 때 인간은 역설적으로 독립성이 증가되고 궁극적으로 자립에 이른다.
 
최고의 칭찬은 ‘말’이 아니라 ‘감탄’이었다는 것을.
 
감탄은 ‘너로 인해 내가 기쁨과 환희,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껴.’라고 온몸으로 전하는 것이다. ‘네가 참 자랑스럽다.’라는 메시지를 심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아는 척하고 혹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고 인내하며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늘 승리했다.”
─ 헤르만 헤세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다.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능력을 연마한 자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공들인 시간의 축적, 수많은 시행착오, 삶에 대한 희망과 건강한 낙관을 가진 자만이 애매모호함을 견딜 수 있다. 광야에서 외풍을 맞으며 내적 작업을 수행한 자만이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을 장착한다.
 
광야는 미리 안다고 더 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불확실하기에 겸허히 살아갈 수 있고 나를 던져볼 수도 있고 무에서 유를 만들 수도 있다. 불확실하기에 도전이 가능하다.
 
광야의 끝자락에서 나는 의외의 것을 배웠다. 광야에서 도망가지 않고 고군분투했을 때 광야의 행진이 온전히 마무리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도달한 그곳은 정상이 아니라 안식처였다. 정상에 섰을 때 광야가 끝나는 게 아니라 안식처에 도달하여 안식할 때 광야는 온전히 마무리된다. 안식처에는 나를 사랑으로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쉬게 해주는 가까운 사람들, 그 다정한 사랑이 안식처에서 내가 깨달은 진실이다.
 
인생의 본질이 광야라면 인생은 전부 광야뿐인가? 인생은 축제다. 살 만한 세상인 것이다. 뜻밖에 만나는 축제와 같은 순간이 찰나에 그칠지라도 그것은 진실로 가치 있다.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 축제와 같음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더 큰 기쁨이 있다. 뜻밖의 감동과 즐거움, 환희가 있다. 그때그때 기쁨과 감동, 즐거움,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일상 속 축제의 순간이 아닐까
 
흘러가게 내버려둘 것: 과거에 붙들리지 말자. 이미 지나간 일과 더 이상 씨름하지 말자. 지나간 일, 두고 떠나자. 과거 그 일이 당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면 미래 어느 시점에 ‘그 일’을 보상하고 만회할 수 있는 계기가 오기 마련이다. 전화위복이 발생할지 모른다.
•  쾌락보다 기쁨: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쾌락, 소비성・소모성 즐거움, 지나친 재미는 중독을 일으킨다. 잔잔한 기쁨, 보람찬 기쁨, 소중한 타인과 양지에서 햇살 받으며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기쁨을 추구하자.
•  소유보다 감상: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지 말자. 옷, 물건, 집, 돈, 젊음, 재능, 직업, 미모, 아름다움 그리고 사람. 내게 없는 것을 소유하려 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말자.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자. 물건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정서적으로 허기진 것이다. 탁월한 재능을 지닌 타인의 성취와 성과를 온전히 감상하자. 감탄하며 즐거이 누리자. 감상이야말로 소유를 대체하고 승화시키는 성숙한 방식이자 태도다.
•  평가보다 관조: 평가하지 말자. 단언과 판단을 보류하자. 관찰하고 관망하며 즐기자.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다면 개방적으로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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