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논픽션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이다. 전쟁 서사는 주로 남성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남자들은 전쟁을 이야기할 때 승리와 패배, 전략과 무기, 그리고 장군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전쟁을 새롭게 조명한다. 여자들은 전쟁의 감정과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꼈던 감각적인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은 단순히 총과 칼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남성들이 전쟁을 역사로 기록한다면, 여성들은 전쟁을 감정의 역사로 남긴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여자들이 전쟁을 겪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들이다. 전쟁에 나갔던 여성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이었다. 남성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면, 여성들은 적군을 죽이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요.
그게 가장 무서웠어요."
이 대목을 읽으며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여자들은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 특히 와닿았다. 전쟁터에서는 생명을 지키려면 살인을 해야 하고, 생명을 주던 존재였던 여성들마저 그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여자들이 전쟁 중 겪어야 했던 신체적, 정신적 고통도 가슴 아팠다. 생리를 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행군해야 했고, 여자들에게 맞는 군화가 없어 큰 신발을 신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총을 들고 싸우면서도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적을 죽이면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임신한 상태에서도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배에 지뢰를 끼우고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낙태해야 했던 여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전장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남자들과 같은 전장에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전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시어머님이 내 남편을 부엌으로 데려가더니 우시는 거야.
'지금 누구랑 결혼하겠다는 거냐? 전쟁터에서 데려온 여자라니..."
나라를 위해 싸웠던 여성들이 정작 평화가 찾아온 후에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남자들은 영웅이 되었지만,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갔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전쟁에 나간 여자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다"라는 사회적 편견은 여성 참전용사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짐승이 되는 거야.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해."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인간성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과연 그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쟁이 남긴 상처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다. 전장에서 겪었던 일들이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 후 피 냄새를 맡지 못하거나, 빨간색을 보면 공포에 질리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우리가 전쟁을 단순히 역사 속의 사건으로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또 다른 여성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전쟁을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전쟁에 대해 단순히 승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고통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언제나 홀로 죽음을 대면해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이 오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전쟁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전쟁의 비극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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