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 백수린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며 나의 환경은 확장된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사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작가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다가, 책 뒤부분의 해설을 보고 이 책의 정체성과 말하고자 하는 바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주제를 둘러싸고 작은 소주제들도 단편 소설들을 묶어가며 생각해보았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계층의 문제, 일상의 파괴, 본능과 이성 등등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의 느낌들을 글로 잘 표현한 듯 해서 좋았다.
책을 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서점에 가서 우연히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였는데, 몇 장 읽고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집에 가서 읽어보려 했지만, 잘 안되다가 요즘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져서 책장을 살펴보다가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요즘 내가 문학 작품들을 보면 마음이 좋아서, 더 읽고싶어졌던 것 같다. (이런 날들이 가끔 있다)
역시, 현대 문학답게 아름다운 문체와 글들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 같고 책속으로 빠져들게 한 듯 싶다. 요즘 현대 문학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한데, ‘쇼코의 미소’를 쓴 최은영 작가가 생각났다. 조심스럽고 아름답고 연한 느낌의 색깔을 띈 글처럼 마음에 살포시 인상을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책은 말 그래도 재미있었고, 자기 전에 휴대폰 조명으로 책을 비춰가며 읽었다.
1. 관계의 불씨가 꺼져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
- 시간의 궤적
낯선 나라 프랑스에서 만난 언니에게 특별한 소중함을 느끼다가, 점점 다른 위치로 가고 있는 것을 깨닫고 거리감을 느끼던 ‘나’는 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선 후회하며 소설이 끝이 난다.
“나는 언니가 유부남이 되어 버린 옛 애인에게 여전히 연락을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 순간 언니가 더좋아졌다.” -> “그건 나쁜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
나의 마음은 이렇게나 변한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서로의 환경이 바뀌면서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간다. 나는 이런 모습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어떤 관계는 그 수명이 다하기도 한다는 것을, 난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다.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대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언니의 마음, 견고하지만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하며, 누구에게도 속박되고싶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갈망다던 언니의 마음속 모순들은 빛과 어둠처럼 언니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그때는 언니가 내 남편에 대해 나보다 더 잘아는 듯이 말하는 것이 싫었고, 나를 조금은 무시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이별의 슬픔은 비단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게 되는 데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드넓었던 나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줄어들어버리는 데에서 오는 고통
2. 나의 본능을 자극하는 “충동”과 그것을 억제하는 “이성”
-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평범한 주부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던 ‘나’는 친한 친구의 초대로 간 장소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되고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니 느껴서는 안되었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공사장을 지나가며 본 남자의 모습에 나는 ‘사랑’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갓 면도한 듯 보이는 남자의 턱선은 매끄러웠고, 구김살 없는 이십대 특유의 자신만만함이 느껴지는 그에게서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
"여러명의 인부중에서 아까 그 젊은 남자는 유난히 눈이 띄였다. 리드미컬하지만 대담한 움직임으로 벽을 부수는, 싱싱하게 젊고 군살이 전혀 없는 근육질의 남자”
전형적인 남편의 직업 '의사'는 그녀의 단조로운 일상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본능을 억제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성숙한 사람의 면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소설속에 나오는 것 처럼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고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나는 사랑을 몰라.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랑, 안정적인 상대와 함께 가정을 꾸리며 특별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일까, 콩깍지가 씌여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불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사랑일까
견디는 일과 받아들이는 일, 무엇이 더 어려운 감정일까.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사랑이라 합리화 하며 일상을 견디는 것?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 흑설탕 캔디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청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할머니는 낯선 나라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현실에 부딪혀 평범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한 동경이 있었다. 손녀인 ‘나’는 그런 할머니를 알고선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을 마무리 한다. 가족을 위해서 아무 불평없이 살아낸 할머니의 마음에 공감하듯, 상상 속 할머니는 손을 움켜지며 "이건 내것이란다" 라고 끝내 말한다.
3. “자신이 애써 이룬 안정적인 지반이 그 밖에 선 타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협받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던 그는 결국 이런 삶의 방식이 충만한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알게 된다”
- 아주 잠깐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씩 인생을 그려가던 ‘나’는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함께 끌어주게 된다. 끌어주다가 실수로 그는 할아버지를 다치게 하지만 빨리 아내가 차려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된다. 몇일 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는 용기가 나지 않았고, 자칫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게될까봐 두려워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탄탄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그는 아내를 안고 잠에 들며 생각한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노인에데 되돌아가기 위해서”
자신이 애써 이룬 안정적인 지반이 그 밖에 선 타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협받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던 그는 결국 이런 삶의 방식이 충만한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해설을 참고 했는데, 다른 단편소설인 “고요한 사건”과 비슷한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 고요한 사건
아버지를 따라 재개발이 추진될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와 가족들은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친해지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들과 자라온 환경과. 내가 만들어갈 미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동네는 점차 재개발이 추진되며, 재개발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사움이 발생하게 된다. 재개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래 고양이 음식에 독을 타서 뿌리게 되고,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동네에서 흔히 ‘고양이아저씨’ 라 불리는 한 남성은 고양이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얻어 맞게 된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래 아버지가 이 사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아버지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어머니에게 "얘 물 좀 떠다줘, 숨넘어가겠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소설 아주 잠깐동안에’의 나와 ‘고요한 사건’의 나는 저항하지 않고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삶을 살아갈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 속 깊은 의미 없이 느껴지지만,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남들과 가같은 인생을 살아나가는 ‘나’를 마주하며 회의감을 느낀다.
4. 다른 세계를 품은 사람을 보며... 나의 환경은 확장된다.
- 폭설
다른 주변 엄마와는 다른 나의 엄마를 나는 특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돌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아빠를 떠나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가끔 엄마를 보러 미국으로 갔지만 엄마와 엄마의 새남편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보면 화가났고, 주변친구들의 엄마처럼 ‘나’를 1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에 울분이 샇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차는 갑자기 멈춰버리고 구해줄 사람이 없던 시골마을에서 나는 엄마에게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이야기 하지만 그 길에서 가까스로 나오게 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 봐, 정말 거짓말처럼 눈이 없는 길이 나왔지?"
"짐승을 한마리도 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우린 참 운이 좋구나"
-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학교를 다닐때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라 불리는 나는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생각을 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이야기 하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왔고 그런 것이 싫지 않아서 우리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임신해서 학교에서 나가게 된 친구와 헤어진 이후, 나는 졸업을 하고 우연히 그녀와 통화를 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우울함과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 있었던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천진난만하고 밝게 이야기한다.
"야, 난 벌써 애가 둘이야. 심지어 애들 아빠가 서로 달라. 놀랍지? 라고 말하며 다미가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웃어서, 나의 코끝으로 어디선가 아카시아 꽃향기가 불어왔다"
‘폭설’과 ‘아카시아 꽃, 첫 입맞춤’은 나와 다른 인물의 등장으로 소설 전개된다. 하지만 그 인물들은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인물들이 아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인물이다. 그 세계를 접하며 나의 삶은 환기된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온기를 얻고 사랑받는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 해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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