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에서 방영한 노멀 피플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2020년에 방영되었고, 유투브를 통해서 요약된 동영상으로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결재를 하고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인물들간의 사랑과 각자의 삶을 아주 감성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치 내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마냥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감정선에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유독 밝고 활기찬 느낌의 드라마 보다는 이런 분위기의 다소 경직되고 어둡게 느껴지는 로맨스 드라마를 더 좋아해서 그런지 인상깊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메리엔과 코널”
이 드라마는 사랑을 주제로 한다. 두 고등학생 소년과 소녀가 만나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장면 장면이 소라색, 푸른색을 가진 듯 청초해보였고 순수하지만 그래서 열정으로 가득한 그들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첫 키스를 나눈 여자 주인공 ‘메리엔’은 잠들기전 침대에서 키스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
비밀로 관계를 이어가기고 한 그들은 학교에서도 계속 눈이 마주치고 신경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를 마친 후 사랑을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거부감 없이 느껴지고 그들이 정말 ‘사랑’을 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서로에게 취한듯한 표정과 행복한 웃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을 매 장면이 바뀔때 마다 느낄 수 있다. 나는 언제 저런 사랑을 했었나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남자 주인공 ‘코널’ 경제 상황때문에 법학과를 가고 싶어하지만, 메리앤은 코널이 영문학을 좋아하는 걸 알고 명문대 영문학과를 지원할 것을 권한다. 그들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순간이다.
친구들에게 ‘메리앤’을 소개하기 꺼렸던 ‘코널’은 그녀 대신 다른 여자에게 졸업 파티에 같이 가기를 청하고, 상처받은 메리앤은 학교도 결석한채 마음 아파한다. 뒤늦게, 친구들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코널은 메리앤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사랑에 아파하는 둘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아 마음이 아팠고, 뒤늦게 후회하는 코널의 모습을 보며 사랑의 비통함을 느꼈다. 왜 사람은 끝나고 나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인지,,, 친구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코널은 이별을 통해서 한층 성장했고, 메리앤도 감정을 추스르며 어른이 될 준비를 했다.
“대학생이 된 메리앤과 코널”
그들은 같은 대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경제적 상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고등학생 시절, 잘나가던 코널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사교 모임보다는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그것이 너무 벅찬 나머지, 점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메리앤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큰 집에서 새로 사귄 사교성 좋은 남자친구와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의 눈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듯 빛이 난다. 그리고 나눈 잠깐의 대화에, 그들은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서로를 떠올린다. 서로의 애인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그리워하던 메리앤과 코널은 각자의 연인과 헤어지고 다시 사랑을 되찾는다.
“떨어지게 된 메리앤과 코널”
메리앤에게 기댈 수 없는 코널은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코널은 다시 메리앤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 후 메리앤은 스웨덴으로 가 교환학생 생활을 계속하고, 코널은 5년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 코널은 친구의 자살로 우울증에 걸려 공황발작을 앓게 되면서 대학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메리앤은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며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혐오적인 하루들을 보낸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허무하고 허망한 시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며 자극을 주는 모습들이 보인다. 서로에게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스카이프(화상통화)로 서로를 위로하고 보살펴 주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시 고향으로 오게 된 메리앤과 코널은, 함께 코널의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코널이 뉴욕의 대학에 합격하게 되면서, 메리앤의 권유로 코널은 뉴욕으로 가게 된다.
그들은 서로가 없는 삶을 두려워 하지만, 그럼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인다.
난 네가 이탈리아에서 한 말들을 잊을 수가 없어
어떤 일도 네 탓이 아니고
넌 아무 문제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해
넌 좋은 사람이야
이건 널 제대로 아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야
그날 밤에 내가 바보같이 군 거 알아
솔직히 우리가 아직 친구라 정말 다행이야
난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했어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널 나쁘게 대한다고 해서
네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고 널 걱정하고 있어
너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이 드라마는 3가지 키워드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사랑, 삶, 그리고 성장
그들은 사랑으로 삶을 이어가고, 사랑을 통해 성장하며 성장한 후의 사랑으로 삶을 만들어 간다.
어찌보면 세가지 단어는 하나로 뭉쳐있는 듯 싶다.
이 드라마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이 드라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한잔의 차,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와인들, 우중충한 날씨와 분위기가 섬세하게 영화를 장식한다. 그리고 배우들의 사연있어 보이는 각자의 눈빛들이 더욱 각 장면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듯 했다.
영국의 연애 문화가 원래 그런지, 잘 모르지만 한국과는 꽤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썸을 타고 ‘사귀자’는 말을 시작으로 연인으로서의 관계가 시작되는 한국과는 달리 조금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서로 각기 다른 연인들을 소개하고 만나는 것으로 보아, “Relationship”이라는 개념이 그 곳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들은 왜 연인이 되고자 하지 않고, 친구로서 남고 싶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추측해 보기로는, 서로가 너무 소중한 존재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연인이 되어 버리면 헤어짐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관계를 이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한국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너랑 헤어지는 연인 사이가 되기 보다는, 계속 오래 옆에 남을 수 있는 친구사이이고 싶다고…
어렸을 적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당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오래 옆에 머물고 싶다고, 연인관계가 되기 보다는 친구가 되어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지금은 그런 관계가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될때가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겁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관계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니 거리를 유지하며 그저 “남”으로 남겠다고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책임감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서로를 정말로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요즘 현대인들이 느끼는 허무함과 공허함에 대해서도 매우 잘 보여준다. 나도 그런 느낌을 20대 중반에 (지금도) 느끼고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더 인상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고민을 거듭할수록 나는 더욱 추락해갔다. 어쩌면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우울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메리앤과 코널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우울증을 겪었다고 보인다. 드라마에는 코널만이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메리앤도 코널 못지 않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남자친구과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다가 자신에게 못되게 대하는 것이, 다정하게 대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그녀의 자기혐오는 표면위로 드러났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사 깨달았을 때 그럴 수 있다. 자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사랑받고자 했을테지만 그 반대의 경우이기에 그렇다. 악담을 듣고 성관계 중에도 그녀는 강하게 대하는 남자친구에게 당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기력한 그녀의 표정과 모습을 보며, 그녀가 스스로 그녀의 삶을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허무한 인생에 자극을 만들어 조금의 인상이라도 남기려는 듯이.
전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사실 그게 좀 힘들어요
원래 겪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도 고립감 같은 걸 분명히 느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사람들이 절 좋아했어요
제 모든 걸요
여기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절 좋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친구 롭도 마음속 깊은 곳 까지 저랑 맞았던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친구였죠
그리고 관심사나 그런 쪽으로 공통점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요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정치적으로도 분명 생각이 달랐을텐데
고등학생 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어차피 같은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리니까요, 이해하시죠?
그리고 롭은 제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여자애들에게 하곤 했어요
우린 고작 18살이었다고요
머저리들처럼 굴었던 거죠
제 생각엔 제가 그런 데 있어서 소외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제 생각에 저는 여기 오면 더 잘 어울릴 줄 알았어요
저는 여기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저는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집을 떠나왔는데...
전 여기가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 때의 우정은 사라졌고 롭도 사라져서 더이상 만날 수가 없잖아요
다시는 그 삶을 되찾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사랑을 했는지, 나는 어땠는지 말이다.
나의 욕심만 채우기 급급해서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상대에 대한 집착으로 내가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사람을 떠났는지, 그렇지 않다면 나의 간사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을 떠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나는 메리앤과 코널의 가슴 뜨거운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미래의 내가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닳을 대로 닳았고 찌들어서 이제는 계산적인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고작 나이 만 23살에). 사랑에 온몸을 바치기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두려워 할 만큼 세상을 알게 되었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기 조차 힘들어 한다. 하지만 가슴을 채우는 충만한 사랑이 주는 힘을 누구보다 알기에, 나는 계산적이고 표면적인 사랑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희망, 즉 “진짜 사랑”을 찾고자 한다.
파괴하지 않고서는 어떤것도 새롭게 창조 할 수 없기에 나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그 길이 어렵고 불안할지라도 현실에 안주하고 유지하는 것 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파괴”한다.
소설이 원작이었던 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인물들의 감정에 잘 이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호소력 있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wavve”로 감상할 수 있다. 여주/남주가 드라마에 너무 잘 어울리고 미묘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어 아마 미드/영드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필히 이 드라마도 좋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너무 재미있고 인상적인 드라마를 찾아서 기뻤다. (그래서 오랜만에 드라마 리뷰도 남김)
장면 부터 드라마 끝까지 드라마가 풍기는 분위기에 매혹된 것 마냥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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