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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최선의 삶 - 임솔아 :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호콩이 2025. 3. 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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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임솔아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강이는 뭐가 그렇게 병신같았을까

다듬어 지지 않은, 날것의 여학생 '강이'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어나가는 순수하면서도 어두운 내용의 소설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부적응자'로서 취급되는 강이는,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우정을 쌓아간다.

"우리가 각자 아무것도 아닐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우리를 뭉치게 했다."

함께 가출을 해서 지하방을 구하고, 술집에서 일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기도 한다. 우정을 다지며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은 이상과 같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우정이 뒤틀리고 최악을 향해 나아가며 소설이 막을 내린다.

우리 어른은 사춘기를 겪어보았기에, 인간 내면의 모순된 마음과 행동을 느껴보았기에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선과 싸움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며 자기 스스로는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으나 사회에서는 무참히 짓밟히는 어린 영혼들의 모습을 이 소설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강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엄마가 나를 부르면 강이가 나와 함께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게 좋았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강이의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리는 저마다의 불행을 한자리에 모아놓고서는 어이없는 교집합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이 문장으로 우리는 강이가 친구들을 향해 느꼈던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병신 같지 않은 누구나가 되고싶을 뿐이었다. 무인 모텔의 누구나 같은, 그런 누구가나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문장으로, 강이가 얼마나 '보통 사람'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속에서의 강이의 모습은 덤덤하게 분노를 표출하지만, 나는 그 어린 소녀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환멸을 너무 나 잘 느낄 수 있었다. 부모에 대한 환멸, 부와 가난에 대한 환멸,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에 대한 환멸. 그리고 그런 환멸이 마침내 친구라고 생각했음에도 자신을 배신하는 친구의 모습에 폭발하고 만다.

나는 강이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고자 했지 그의 문제점을 병리학적으로 이해하고싶지는 않았다. 어른인, 내가 세상을 다 이해하고 아는 것 처럼 '그땐 어려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지는거야'라고 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도 청소년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그들을 같은 입장에서 이해하고 바라보고 싶었다. 훈계질 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방황을 한낱 사춘기에 발현되는 행동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은, 자기는 어릴때 그러지 않았던 것 처럼 혀를 쯧쯧 차곤 한다. 부모가 잘못 키웠네, 왜저렇게 삐뚤어진거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판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소설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천천히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보면서, 그들의 내면에 공감하게 된다. 그게 소설, 그 중 비극의 역할이라고 본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배척하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너그럽게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비극을 통해서 우리는 타인의 잘못과 행동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잘못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그들을 매서운 눈빛이 아닌 보통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균과 정상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깎아냈다.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지만, '평균' '보통'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점들을 뭉개버리고 사회의 옷을 입고 산다. 그리고 마침내 보통의 인간이 되면, 보통의 인간이 아닌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인 척 취급한다.

최선의 삶을 위해 누구보다도 현실에서 발버둥치고있었을텐데 그걸 방황과 엇나감으로 판단하는 세상속,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 친구들사이에서의 모습과 부모님의 기대감과의 괴리감

그리고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친구들을 겪으며 알수없는 싸늘함과 적막함을 느끼는 강이의 모습을 볼 수있었다. 같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병신이라고 느껴질때의 참담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마음이 아팠고, 내가 병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런 노력 조차 스스로 병신이라고 생각하는 강이를 보면서 나의 이전 모습을 보았다. '그런 나를 진짜 병신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한때 나도 느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절벽 모퉁이까지 밀어넣고 싶은 그런 마음. 나를 너무 사랑하는 동시에 나를 망쳐버리고 싶은 이 기분. "방황"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는것에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다. 아니, 답답했다기보다는 속상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상황이 해결되기 힘들어 보일때, 중간을 지키기 힘들어 보일때 우리는 극단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나 자신을 병신이라고 취급하는것이 그런 마음에 속한다. 하지만 마음속 강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 자신을 보듬어 주기위해서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는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소영을 향해 칼을 꺼내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것 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영을 향해 그리고 사회를 향해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가 거들떠보지 않으니. 자신의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사춘기의 문제로 취급하는 선생님과 길거리의 아저씨들. 어떻게든 그 어린 아이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아이들 스스로.


나는 어린 강이를 보듬어 주고 싶었다. 소영을 죽이러 가는 강이를 보듬고, 강이가 그것 보다 더 밝은 미래를 볼수있도록 이끌어주고싶었다. 우리 모두가 병신이니, 사람들은 완벽할 수 없고 크고 작은 아픔과 단점들을 다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걸 조절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최선의 삶을 살고자 했던 강이야. 최선의 삶은 보통의 삶이라고.. 남들과 같은 어른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쩔 수없나보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던 강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본다면, 나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를 뭉개버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린 자존심으로, 내가 뭔가를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내새우는 마음과 강이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미신을 믿는 엄마와 강압적인 아빠 사이에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체념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간 곳이 친구들 사이.

그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침내 '소영'에게 무시 받는 모습을 보이니, 마지막 자존심마져 무너져 내린게 아닐까.

하지만 강이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영에게 복수하는 대신에 - 에게 찾아가서 해명을 요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소설 속에서 보이는 비유(투어)와 작가 특유의 담담하지만 눌러담은 분노가 보이는 문체가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 같다. 사회적 배경과 가정환경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려내며, 흑색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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