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케빈에 대하여 : 삐뚤어진 케빈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법
이 영화는 예고편만 계속 보다가 친한 후배 집에 가서, 빔프로젝터로 같이 보기로 한 영화이다. 이 전부터 계속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뭔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잔잔하고 모순적이고, 아무 내용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에게 큰 감동이나 이야기를해 주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영화가 꽤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영화가 끝나고 이렇게 글을 적거나, 아님 후배랑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때에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무슨 영화이지? 하는 의문으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암시적인 장면과 앞뒤 문맥이 없는 중간단계의 모습들만 보여주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영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흐름이 잡히게 된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에바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에바는, 프랭클린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이 영화의 두번째 주인공, 케빈이다. 케빈은 어릴 때부터 많이 울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울음소리가 너무 싫었다. 그 울음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공사장 옆에 서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케빈이 커갈수록 점점 더 삐뚤어졌다. 엄마가 1을 하라고 하면 2를 하고 2를 하라고 하면 1을 하는 아주 말썽꾸러기의 아들이 되었다. 엄마를 골탕 먹이기 위해 방금 기저귀를 갈면 바로 오줌을 싸버리는 등의 행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마인 에바가 케빈을 더욱더 싫어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마지막 남은 책임감으로 케빈을 키우고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케빈은 더 삐뚤어졌다. 에바는 남편인 프랭클린에게 이렇게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말하곤 했지만 프랭클린은 에바가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일뿐, 케빈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케빈은 점점 더 삐뚤어 져서, 둘째 아이인 실리아에게 해를 끼치고 눈을 멀게하는 등의 행을 하였다. 그리고 엄마앞에서 자위를 하는등, 엄마를 더 당황시키려고 했고 마지막으로 그는 학교에서 문을 다 잠궈놓고 살인을 저지르고, 마지막으로 아빠인 프랭클린과 자기 동생인 실리아를 죽였다. 그리고 그는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엄마를 찾았다. 마치 엄마가 자신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있는 것처럼. 마치, 엄마가 이렇게 하면 나를 봐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주제를 정리해보면, 이 영화 리뷰의 소제목으로도 정한 “삐뚤어진 케빈이 엄마의 사랑을 받는법”이라고 정해보았다.
뒤에 자세한 이 영화 리뷰에 나오기는 하겠지만, 케빈이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인 에바는 불편해 하고 힘들어했다. 케빈이 태어나서도 그를 그렇게 밝게 맞아주지 않았고, 그를 보면서 에바는 그다지 웃은 적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를 꼭 안아준적이 없다. 그런 소시오패스 기질을 가지던 케빈은(그렇다고 추정한다) ,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이런 저런 말썽도 지어보고 또 사고를 쳐보기도 하지만 그런 행동에 엄마는 케빈의 곁에서 더 물러날 뿐이다.
그리고 더더 삐뚤어진 케빈은 사람을 죽이고 또 심지어 아빠와 엄마를 죽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나를 봐줄 것 같다는 눈치로, 그리고 교도소에서 본 그의 모습은 어딘가 보르게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더욱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되어서 이제 엄마가 나 때문에 더욱 고통을 받고 나를 생각하기를 원하면서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바는 케빈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왜 그랬니?” 이때까지 에바는 케빈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지 않고 그의 행동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했다. 하지만 에바는 감정을 억누르며 케빈에게 물어본다.
케빈은 “나는 다 알고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고 단정지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엄마가 나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한다.

1. 빨간색
이 영화에서는 유독 빨간색이 많이 나온다. 에바가 출산을 하기전,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일 때, 스페인에서 토마토 축제에 참가 하는 것부터 빨간색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있는 집의 하얀색 페인트, 마트의 빨간색 통조림, 그리고 피.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을 남겨놓은 사람의 글을 읽어 보았다.

빨강은 에바를 상징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녀가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붉은 것들을 닦아내기 시작하며, 긁고, 씻어낸다고 한다. 에바가 아닌 어머니가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읽으면서 엄마가 되었고, 자유를 되찾고 싶었지만 아이을 위해서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스러워 하면서 “빨간 피”를 흘린다.
영화를 보면서 빨간색이 정말 많이 나온다고, 후배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단지 그냥 에바의 고통을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려고 빨간색이라는 색감을 영화에 많이 투입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런 의미를 보고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참 에바의 고통이 심했으리라 추측된다.

2. 엄마의 사랑
이 영화의 제목은 “엄마의 사랑”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엄마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엄마의 사랑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던 에바가, 원하지 않던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런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케빈의 옆에 계속 기웃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사랑을 표출하는 지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삐뚤어지고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나쁜 행동들을 계속 한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더 힘들어 지고 더 사랑을 줄수 없어하는 것 같다.

이 리뷰도 방금, 다른 리뷰를 퍼온 것인데, 꽤나 설득력이 있어보여서 남기게 되었다. 영화는 설명도 자세하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이 사람이 말한 것처럼 “대화를 하지 않으면 치유하지도 못한다.” 케빈과 에바는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나눠보려고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감정(서운하고 힘든 감정들이) 쌓여갔다.
그러다 케빈이 사람들을 다 죽이고, 에바를 제외한 아빠와 여동생을 활로 쏴서 죽이고(완전 기괴하지 않은가,,, 또 에즈라 밀러가 진짜 사이고처럼 그렇게 (이런말 하면 미안하긴 한데,,,) 생겨서 , 뭔가 영화에 잘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심지어 에바랑 닮았다,, ) 교도소에서 에바가 케빈을 안아주는데, 그 장면으로 에바가 케빈을 꽉 껴안아 준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마, 에바도 사랑을 하는 방법을 잘 몰랐을 것이고 (최소한 모성애를), 그래서 아이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가지게 된 아이를, 키워내기가 스스로 버거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그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방법을 다르게 사용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달라고 한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먼저 사랑을 표현한다던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즘에 금쪽 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영화도 엄마와 아들간의 사랑과 결핍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 프로그램이 갑자기 생각이 났던 것 같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사랑한다고 표현해주세요”라는 말을 오은영 박사가 많이 해주는데,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또 아이를 더욱 버거워 하는 엄마들이 나와서 힘든 마음을 토로하는데, 그것이 아이의 잘못인 줄 알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엄마가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해서,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을 달라고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도 엄마인 에바가 더 케빈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꽉 껴안아 줬다면, 그가 이렇게 엇나가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이버 리뷰, 평점을 살펴보다가 인상적인 댓글을 읽게 되었다.
“내 청소년기때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상처를 주려고 애썼던 나날들,
그게 모두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다는 표현에 비롯된 나의 행동이었다.”
이 댓글을 보고, 나도 나의 청소년기가 생각났다. 엄마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으면 하는 바램에, 그걸 알고 나를 꼭 안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썽을 부리고 떼를 피운 그때가 생각났다. 반항의 마음속에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주 작은 소녀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이 영화도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영화를 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바의 입장과 케빈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가서, 마음이 아팠고 또 답답하고 안쓰러웠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제목도 “케빈에 대하여”로 바뀌었는데, 영어 원문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이 더 와닿는 것 같다. 케빈에 대해서, 케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냥 그저 케빈의 행동을 “미쳤다, 왜저래?” 라고만 보기 보다는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그 밑바닥을 함께 살펴보자는 의도의 주제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인상깊었던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