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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 함께 사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다

호콩이 2026. 2. 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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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새로운 시각으로 가족을 바라보게 해주고, 내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깨줄 수 있는 소설인 가녀장의 시대..
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것 같으면서도, 작가가 지향하는 가족의 모습을 소설속에 담아내려 한 것 같았다.


슬아와 복희와 웅이
슬아는 복희와 웅이의 딸이고, 세 가족은 함께 한집에 살고 있다.


슬아는 작가로서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엄마인 복희와 아빠인 웅이를 고용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속에 있기도 하다.
복희와 웅이는, 부모인데도 불구하고 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잔소리를 시전하지 않고 또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도 않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들을 고용한 딸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을 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딸에게 손댓말을 쓰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면서도 같이 살아가는 가족인데 저렇게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들이 쉽지많은 않겠구나 생각한다.


가족이라면,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게 되고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들에 아주 쉽게 입을 대기 마련인데
웅이와 슬아는 같이 담배를 피기도 하고 (슬아는 대놓고 피는데 웅이가 오히려 슬아의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핀다 -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가 드러나는 곳), 급여 외의 보너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또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좋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슬아의 친구는 집에 무엇이 고장났을때 편하게 웅이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고
그들의 삶을 쉽게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래도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다.

불편하지 않았고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집에 동성결혼을 한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때도 편견없이 그들을 대하고 질문하고 똑같이 밥을 차려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언가를 바꾸려들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 집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너무 과한 나머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술을 그만 먹어라. 건강한 음식을 먹어라.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라. 공부해라...) 서로에게 기대하는 무언가를 말하는데, 그래서 내가 부모님 곁을 어릴때부터 떠나고 싶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도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라서 이런 슬아의 가족 형태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내가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좀 더 수평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가족을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슬아네 집에서 서로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서도 마음은 서로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쓰는 슬아가 항상 괴로워할때면, 작가로서 사는 일이 힘들어보인다고 부모인 복희와 웅이는 생각하고

"복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성공 같은 건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테레비나 보러간다"


매일 다른 반찬으로 요리를 하고 주방을 정돈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 것 처럼 느껴져 허무함을 느낄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슬아는
복희의 일을 존중하고 그녀에게 김장 휴가나 상여금, 월급도 챙겨주면서 그녀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한다.
웅이에게도, 필요한 가전 제품을 법인카드로 사라고 하고 필요하다면 조기 퇴근도 시켜주고 상여금과 월급을 주며 타인의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슬아는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은 담글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은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에 도가 텄지만 글을 읽고 쓸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아무도 여기서 타인의 일과 생활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존중한다.
"뭐 그깟 된장 담그는게 일이라고?"
"집안일 뭐 그냥 하면 되는거 아니야?"
"집에 앉아서 글만 쓰는게 뭐가 힘들다고 투덜거려" 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배려해준다.
그들의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여겨준다. 
나도 일에는 순위가 있어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일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구별하곤 한다. 하지만 세상 직업에 귀천이 어디있겠는가
남의 직업을 인정해주는 자세가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하며 글을 읽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좋은 말들이 많았다. 글을 쓰는 작가의 삶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살림을 사는 엄마의 모습,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생색 내지 않는 아빠 웅이의 모습도 감동을 받았고 그렇게 늙어가고 삶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음은 괴로워...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거든"
복희가 묻는다
"그게 행운이지, 왜 괴로워?"
정수리를 굴리던 슬아가 대답한다.
"다 해봐야 할 것 같잖아. 안누리면 손해인것 같잖아"

- 요즘 사람들은 젊은게 좋다고 젊음의 열정과 그 에너지가 부럽고 그 나이가 제일 좋다고 말하곤 한다.
근데 나도 되돌아보았을때 불안하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던 그 나이 (지금도 그 나이에 있는지 모르겠지만)가 제일 힘들고 괴롭고 불안했던 것 같다.
요즘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가진 엄마와 함께 사는 슬아가 부럽다.

고단헌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거실에 나가보면 딸은 역시 아직도 일하고 있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약간 늙은 듯한 얼굴로 뭔가를 쓰고 있다.
복희는 "다 썼어?" 라고 묻지 않는다. 딸은 그 말에 노이로제가 있다.
"아직"이라고 말할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게 분명하다. 다 썼냐고 묻는 대신 복희는 딸의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채워준다.

-> 이런 문장속에서도 사랑이 묻어난다... :)

딸을 재촉하지 않고 고생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뜨거운 물을 채워주는 것..

이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 아닌가..! 

"선생님은 먼저 선에 날 생이 합쳐진 말이잖아요. 먼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요"

 

요즘 나는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더 더 친절해지고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도 그런 이야기다. 뭔가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제목과 내용으로 몇몇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찬 책이라고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서로가 편해지고 서로의 삶을 인정해줄 수 있는지 그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항상 편견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편견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고 열린 마음과 넓은 그릇으로 사람을 보듬고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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